진심으로 역대 최고의 다이빙 헤딩골이었다.
조별리그 최고의 빅매치에서 언더독인 네덜란드의 의외의 5-1 완승.
결과만 놓고 봤을땐 일방적인 경기로 보일 수 있으나 고수간의 일합승부였으며, 승부의 분수령은 전반의 2장면이었다.
1. 1-0 스페인 리드 상황에서 이니에스타의 패스를 받은 실바의 결정적 슈팅을 네덜란드 골리인 실리센이 선방한 것.
강팀간의 대결에서 1-0과 2-0은 큰 차이가 있다. 만약 실바의 골로 2-0까지 벌어졌다면, 스페인의 노련한 경기 운용으로 네덜란드가 경기를 가져가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2. 전반 막바지에 터진 반페르시의 환상적인 다이빙 헤딩골.
전반전만해도 스페인의 유기적인 패스플레이가 네덜란드에 비해 우위에 있었으며, 전방에는 로벤과 반페르시가 고립되는 형국이었다. 아랫쪽 공격이 잘 먹히지 않는 시점에서 반페르시는 전방으로 넘어오는 긴 로빙볼을 다이렉트로 다이빙 헤딩으로 연결하며 환상적인 골을 만들어 냈다.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카시아스를 농락한 이 장면은, 단언컨데 내가 본 어떠한 다이빙 헤딩골보다 멋졌다.
이 골로 인해 네덜란드는 대등한 시점에서 후반전을 맞이했고, 동점임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은 쫓기는 입장으로 분위기가 바뀌면서 공수간의 밸런스가 무너져 대승의 시발점이 형성됐다.
네덜란드는 지난 월드컵 결승의 리벤지를 확실하게 하며 2006년 월드컵을 준비하는 시점부터 세대교체가 됐던 반바스턴의 아이들이 세계 최고로 성장했다는걸 보여줬다.
이 세대가 무서운 점은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의 특색을 갈아엎었다는데 있다. 상승세를 타면 누구던지 갈아버릴만한 개인기량을 갖췄음에도, 팀웍이 깨지면 모래알처럼 무너지며, 멘탈이 약해 라이벌팀에게 역전패를 허다하게 당하던 예전의 네덜란드의 모습을 현 세대에서는 찾기 어렵다.
물론 유로 2012에서 감독과의 불화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것은 예외로 한다면,
2010 월드컵에서는 무려 브라질에게 역전승을 거뒀고, 이번 월드컵은 스페인을 그야 말로 분쇄시켜버렸다. 이는 전성기 독일 대표팀이 보여줬던 끈끈함과 유사해보인다.
네덜란드는 기세가 살아나면 브라질, 아르헨티나와도 오픈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팀이며, 스페인으로서는 이 기세를 살려준 것이 큰 패착이라 하겠다. 물론 그 기세의 시발점은 에이스 반페르시의 헤딩골이었다.
스페인은 그동안 야기됐던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며 98 월드컵 이후 예선탈락을 걱정해야하는 처지가 됐다.
먼저 사비와 알론조 같은 팀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로 인한 기량 저하가 가장 큰 문제다. 구체적으로는 기동력과 활동력 저하가 크다.
볼소유를 많이 하여 주도권을 가져온 후 압살하는 스페인의 스타일상, 많은 활동량이 필요한데 현재의 사비는 그런 활동 자체가 버거워 보인다. 물론 사비의 경우 첫 골 pk상황으로 이어진 결정적 패스를 보여준 만큼 패싱능력은 아직까지 뛰어나지만, 중간에 패스가 끊길 경우, 공간을 노출하며 백업 자체가 되지 않는 모습인데, 이는 바이에른 뮌헨, 네덜란드 같이 빠른 팀에게는 더욱더 취약한 모습을 보여줬다. 전반적인 노쇠화를 보인 스페인 미들진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이는 이니에스타 정도라 하겠다.
피케, 라모스의 중앙수비는 기본도 안되어 있다. 둘다 공격적인 재능이 있으나, 수비수가 공격적 재능이 충만해서 무얼 하겠는가. 과거 수비수중 최고의 공격적 재능이 있는 호베르투 카를로스가 왜 말디니나 리자라쥐보다 낮은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었는지 알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반페르시 동점골 상황에서 피케는 이를 온사이드로 만들어주는 공을 세웠으며, 둘의 불협화음은 카시아스에게 수차례 네덜란드 공격전과 1:1 상황을 선사했다.
카시아스는 정상인가? 골키퍼론 많지 않은 33의 나이지만, 전성기보다 순발력이 많이 떨어진 느낌이다. 골리로서 작은 신장인 그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순발력 때문인데, 이게 떨어지면 그만큼 더 치명적이 될 수 밖에 없다.
과거 맨유의 두 주전 골리인 바르테즈와 반데사르의 예만 보더라도, 단신의 순발력이 장기인 선수가 그 순발력이 떨어질 경우 얼마나 평범(혹은 위험) 한 골리가 되는지 알 수 있다. 현재의 카시아스는 순발력이 떨어지면서 그 특유의 판단력마저 조금은 흐려진 느낌이다. 데브리의 3번째 골은 반페르시의 골키퍼 차징이 맞다고 보지만 카시아스의 판단미스가 있었으며, 반페르시의 추가골은 명백한 카시아스의 실책, 로벤의 추가골도 카시아스가 조금더 시간을 벌어줬어야하는데 먼저 로벤에 속아 슬립된 실수가 있었다.
구멍난 중앙수비에, 무너진 철옹성 카시아스. 이것이 스페인 수비진의 현 주소다.
98월드컵 당시에도 초반에 나이지리아에게 얻어맞고 이후 분전했지만 예선탈락의 수모를 맞봤다. 지금은 상황이 더 어려워 보인다.
먼저 그때도 파라과이에게 승리를 가져가지 못했는데, 지금 같은 조인 칠레는 파라과이보다 전력이 더 좋으며, 현재 유럽팀에 비해 홈 어드벤티지를 누린다고도 볼 수 있는 남미 팀이다. 결코 스페인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다.
호주를 다른팀이 모두 제압한다고 봤을 때, 스페인은 칠레를 잡고, 네덜란드가 칠레에 최소한 무승부를 거둬야 스페인에게 유리한 상황. 여기서 상황이 반발자국만 꼬여도 골득실을 따져야하는데, 오늘 얻어맞은 5골은 스페인에게 너무나 치명적일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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